선상만세운동 소개

불타는 삼월, 위대한 독립 3·1운동기념
행주나루터선상만세운동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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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주나루터 소개

살아있는 역사이자 삶의 터전, 행주나루터

전국 유일의 선상만세운동 현장
어부와 주민들이 배를 타고 한강에서 대한독립만세 외쳐

황금어장이자 교통 요충지였던 행주나루터

행주나루터는 고양시의 서남쪽 한강하구에 위치하고 있다. 행주대교 북단이 시작되는 곳 대교 밑이 행주나루터다.
하지만 원래의 행주나루터는 현재의 나루터에서 상류 쪽으로 200여 미터 올라가야한다.

행주나루터는 오래전부터 교통요충지이자 황금어장으로 불렸다. 행주나루터 앞을 흐르는 한강을 행주사람들은 행주강이라고 불렀다. 이곳은 민물인 강물과 짠물인 바닷물이 만나는 곳이 기수역이다. 어민들에게는 황금어장으로 농민들에게는 농사를 짓는 농업용수로, 지역주민들에게는 멱을 감고 놀던 추억의 백사장과 갈대밭으로, 삼국시대부터는 각 종 문물이 오가던 교역항으로 수혜를 받았던 곳이다. 삼국시대 이전부터 어업을 해온 이곳에는 지금도 41명의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하며 살고 있다. 이들 어부들은 고양시를 끼고 흐르는 22km 구간의 행주나루터와 신평뱃터, 이산포나루를 무대로 고기잡이를 하고 있다. 어부들은 신곡수중보를 중심으로 상류를 ‘윗강’ 하루를 ‘아랫강’이라고 부른다.

도시어부들의 삶터, 행주나루터

고양시는 도시화가 된 지 오래된 곳이다. 그래서 이들 어부들을 도시에 살면서 고기를 잡는다고 해서 도시어부라 부른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역이다 보니 어종뿐아니라 동식물도 다양하며 철에 따라 어부들이 잡는 어종이 다르다. 습지에서 농사를 겸하는 어부들도 있고 어획량 이 풍부하지 않은 때는 일용직 노동을 하는 어부들도 있 다. 행주에서 주로 잡히는 어종은 봄에는 실뱀장어를 잡이를 하고, 여름까지 황복과 웅어, 가을이 오면서 내림장어라고 부르는 살이 찐 장어잡이와 참게잡이를 하고 숭어, 붕어, 잉어, 농어, 메기 등은 겨울 중에도 한다. 어부들의 수입 중 70%는 실뱀장어다. 실뱀장어는 동북아시아에서 3,000km 떨어진 필리핀 동북쪽 서태평양의 마리아나제도에서 산란해 2년에 걸쳐 우리나라에 다다른다. 강으로 거슬러 오른 실뱀장어는 어부들에 의해 양식용으로 잡히고 나머지는 강에 머물며 먹이활동을 하며 살아 가을이 되면 다시 마리아나제도로 가기 위해 바다로 향한다. 이때 어부들은 내림장어라 부르는 살찐 장어잡이에 나선다.

전국 유일의 배를 타고 부른 만세운동

고양시의 대표적인 어촌마을인 행주외동의 행주나루는 한강을 끼고 있어 고기잡이를 하는 어부들이 예전부터 있어왔다. 삼국시대 때 행주산성이라 부르는 덕양산을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되었고, 백제의 도성인 한성과 조선시대 한양으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하는 교통중심지로 발전했다. 한강을 이용해 물건을 운반하는 수상교통의 요충지였으며, 1593년 2월 12일에는 권율장군이 고양군민과 함께 왜병 3만여 명을 물리친 행주산성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또 1910년 미국에서 귀국한 안창호 선생이 대한제국이 일제에 강제병합 되자 신채호 선생 등과 4월 7일 행주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망명하며 ‘거국가’를 지은 역사적인 곳이기도 하다.

1919년 3월에는 서울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3·1운동을 계기로 행주내리와 행주외리에서는 11일과 23일, 28일 세 차례 만세운동이 일어난다. 11일 서울과 고양군 각지의 만세운동과 더불어 행주외리에서는 횃불을 신호로 행주산성에서 만세를 불렀고 일본경찰이 쫓아오자 행주나루터로 가 배를 타고 한강 한가운데로 나가 만세를 부르며 하류로 내려갔다. 이때의 기록이 <三·一運動祕史>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이후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는 이때의 만세운동을 재현하기 시작했다. 2015년 행주나루터선상만세운동재현행사를 시작할 때 행주어촌계가 도움을 주었다. 재현행사는 행주어촌계 없이는 불가능한 행사였다. 당시 박찬수 어촌계장은 어부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재현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후 행주어촌계는 매년 행주나루터선상만세재현행사에 어선과 바지선 등을 제공하며 참여하고 있다.